그래. 어차피 너희들의 마음속에 난 없잖아

예절이라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그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이런 저런 것들을 배려해주는 것이 예절이라고 알고 있다. 굽신굽신 하는 것을 예절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예절은 남에게 굽신거리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마음을 성심성의껏 배려해 주는 것을 말한다.

난 내가 가부장적인 집에서 태어난 것을 알고 있고, 나의 부모님이 교육과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매우 고지식한 방법으로 키우셨다는 것도 알고 있다. 믈론 그에따른 영향으로 나 역시 그런 성향이 있다는 것 또한 말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기에 되도록이면 남들이 말하는 평등한 가풍을 만들려고 했고 아이에게 충분한 이야기를 들은 후 무언가를 정하려고 노력했다.

현실은 시궁창.


아이는 내가 없을때 툭하면 아내에게 '아빠는 무서워', '아빠가 무서워서 힘들어', '아빠가 무서워서 무얼 못하겠어'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좀 더 '다정한 아빠'가 되어 달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빠라도 아이를 제대로 잡을 수 있어야지"라며 무서운 아빠로 있는 내가 옳다고 한다.
그렇다는 것은 "무서우면서도 자상한 아빠"가 되라는 건가? 그런게 있는가 보다.

문제는, 집에서 내가 짜증이나 화를 안 내는 날이 거의 없다는 것.
아내는 설거지, 청소, 빨래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매주 월/금요일에 오는 가사도우미 분이 해준다고 더더욱이 안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어렸을때부터 처가집에는 가사도우미가 왔었고, 그 누구도 아내에게 집에 있으면 청소를 해야한다거나 빨래나 기타 등등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아내가 전혀 안하다 보니 절반의 일을 내가 하고 있다. "왜? 가사도우미 오면 가사도우미 시키면 되잖아. "라고 말하고 싶지..? 이보게, 가사도우미도 사람이고 일을 최소한도로 하고 싶어하는게 당연하잖아. 다시말해 여기저기 이곳 저곳 청소해 달라고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대충하는게 당연한 거다. 당장 마루 화장실만 해도 언제부턴가 물로 닦은 흔적이 전혀 안보이던데 말이야.

딸아이도 엄마를 꼭 빼닮아서 - 당연하지 부모를 보고 배우는게 아이인데 부모가 안하는데 그 자식이 하겠냐? 미쳤냐? - 아무것도 안한다. 아이가 하루종일 있는 날은 집이 엉망진창이다. 사람 자는 안방 침대 위에서 과자부스러기 흘려가며 먹고 있고, 방바닥에는 놀다 내버려둔 장난감이며 학교숙제며 모든 것이 지 멋대로 굴러다니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이는 부모가 시키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해야 한다는 것도 모른다. 엄마가 아무말도 안하니 맨날 잔소리 하는 것은 나 뿐이고 그러다보니 아빠가 나타나면 주눅들고 눈치를 보게 된다.

결국 나 혼자 쓸고 닦고 치우고 짜증내고 혼내고 잔소리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대니까 아내는 내가 무언가 치우고 있으면 불편해 하고 아이는 내 눈치만 본다. 이게 두려워하고 눈치보는 것 뿐인 거지 내가 어떤 상태에서 행복해 하고 어떻게 해주면 좋아하는지 그런걸 일부러 챙겨주는 것이 아니다. 그냥 없으면 속편해하는 거지 뭐..
요즘 자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정작 가족이라고 딱 두 명있는 그들은 내가 틱틱거리고 화내고 뭐라 할까봐 무서워하고 조심하는거지, 내가 좋고 사랑스러워서 날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은게 아니다. 그냥 내가 별 일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있고 자신들에게 뭐라 안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냥... 이제는 지친다. 그들이 날 위해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데도, 난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 내가 왜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가족이기 때문에 난 항상 그들을 챙겨줘야 하는 건가? 그게 당연한 사회의 규칙인걸까? 난 이렇게 피곤하고 슬프고 힘든데 날 사랑한다는 아내는 내가 무엇때문에 화가 났는지 무엇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난 아내를 위해 무언가를 계속 해줘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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