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르지 뭐

요즘 가족과의 조화로운 생활을 포기한 상태이다

한 2~3주 되어가는 것 같은데, 지난번 아내가 나에게 '아이가 아빠가 무섭데요'라고 한 이후부터 가족을 위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살고 있다. 그래도 그 전까지는 가능하면 하람이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 조심조식 조용히 설명하고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이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있다.

어차피 내 기준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 내 입장만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누가 뭐래도 난 매우 엄격한 집에서 태어났고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 부모님이 매번 나에게 '이건 안된다.' '저건 안된다' '하지마라' 한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물론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내 마음속에선 아버지는 대화가 거의 없는 분으로 정말 큰 실수를 했을때 날 혼내는 것 말고는 아예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분이고, 어머니는 항상 옆에 있고 이것저것 많이 챙겨 주셨지만 그럼에도 성적이 떨어지거나 다른 문제가 있으면 끝임없이 날 혼내고 잔소리를 하셨던 분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좋게 타이르는거? 그런게 존재하는지 난 잘 모르겠다.

엄하게 자라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10년 가까운 자취생활과 함께 난 내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을 만들어 냈던것 같다. 물론 그 방식이 다른사람들이 보았을때는 다소 이상하고 강박적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결혼 생활 10년을 돌이켜 보면 매번 부딪히는 문제는 큰 사건에 대한 해결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소소한 가정내 문제들이었다. 예를들면 아내가 빨래를 전혀 안하고 내버려 둔다거나 설거지를 안한다거나 식사 준비를 전혀 못하는 그런 것들이었다. 아내의 부모님들(처가집)은 이런 문제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셔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내가 태생적으로 느긋하고 지저분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성향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집은 항상 엉망이었다. 하루 10~20분만 투자해도 얼마든지 정리할 수 있는 잡동사니들이 집에 널려 있었고, 빨랫감이나 설거지감은 언제나 쌓여 있었다. 싱크대에는 물에 담가놓지 않은 설거지 거리가 가득 있었고, 식사하고 나서 반찬이나 밥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 뚜껑이 열린채로 반나절 가까이 식탁에 올라와 있는 일들이 흔했다.
여러차례 아내에게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말을 한 그때 뿐이었고 거의 달라지는 것이 없었으며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오신 이후로 이 일들은 전혀 달라지지 않고 평행선을 긋고 있다.

나도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내가 챙겨주는 밥을 먹고 아내가 설거지나 빨래를 하는 것을 다른일 하며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무시하고 생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둘 다 맞벌이를 하기 때문이다. 직장생활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는 일이 어떤 종류라고 하더라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차례 잔소리를 하고나서는 내가 하며 지냈는데, 내가 하고 마니까 달라지는 것이 더 없더라.
문제는 이렇게 본인이 안하면 가사도우미에게 제대로 일을 시켜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얼마전부터 슬슬 느끼기 시작했는데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우리가 없을때 집에 와서 일을 하니까 직업적으로 자기가 해줘야 하는 일만 하고 떠나버린다. 특히 화장실의 경우에는 1~2개월 전부터 퇴근하고 보면 바닥에 물기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몇 주 전부터는 변기 주위에 오물이 전혀 닦여있지 않았다. 분명 청소를 안하고 그냥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나이에 의한 건망증이든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이든 분명히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인데도 그렇게 안하고 방치되고 있다. 이럴바에는 가사도우미가 왜 필요한가. 그냥 내가 그 돈 받고 청소하는게 훨씬 나아보였다.

딸아이라고 다른까? 처음부터 잔소리 하고 화내고 때리는 역할은 내가 맡고 있었고 그러다보니 딸아이는 내 눈치를 맨날 살핀다. 내가 어떻게 말할까, 내가 어떻게 반응할까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너무 확실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고 조심하게 되었고, 아이 엄마는 나에게 좀 더 부드러운 아빠가 되라고 항상 이야기했다.
나역시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자꾸 부드럽게 이야기하거나 좋게 타이르는 걸 노력하고는 있었지만.
결국 그런 모든 노력이 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만약 내가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버지 역할을 하면 누군가 딸아이의 생활습관이나 행동, 공부에 대해 신경쓰고 관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전혀 그렇지 않다 딸아이가 자기 방응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도, 안방을 장난감으로 엉망진창을 만들어도, 심지어 침대 위에서 티비 보며 과자부스러기를 잔뜩 흘려놔도 아무 말이 없다. 학교에 돌아오며 잠바나 바지, 가방, 실내화 주머니를 아무데나 마구 던져놔도 아무 말을 안한다. 몇 차례 이야기 해도 안되길래 너무 화가나서 바닥에 널부러진 가방이나 실내화 주머니를 하람이 보는 앞에서 발로 차버리고 나니 조금 고쳐진 것 같기는 하지만 무슨 동물 새끼도 아니고 또 조금 지나면 그대로다.

아이에게 자상한 아버지가 되라고 하며 아이의 잘못을 누구도 타이르지 않아 결국 내가 타이르게 된다. 그리고 해도 안되니 강도가 점점 올라가고 화를 내게 되는데 화를 내면 좋은 아버지가 되라고 한다. 이와중에 딸아이의 생활습관이나 행실은 전혀 달리진 것이 없다. 오히려 내가 혼내고 나면 엄마는 딸아이 달래준다고 정신이 없고, 딸아이는 그 과정에서 위안을 받음과 동시에 용서를 받는 것 같다. 용서? 무얼 했다고 용서를 받는거지? 아직도 바닥에 옷이나 과자부스러기가 잔뜩 있는데? 하나도 안 치우는데?
거기에 아내는 아무리 생활습관 변화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을 이야기 해도 그때 뿐이다. 그냥 생각나면 하고 아니면 또 아무데나 어지르고 내버려두는 행동을 딸아이처럼 하고 있다.

몇 차례 노력을 했다. 그냥 다 잊어버리고 이 사람들이 내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해버리자라던가, 아내는 너무 힘이 드니까 내가 아내일을 대신 해주자던가, 딸아이에게 그래도 얼굴을 맞대는 순간에는 웃는 낫으로 보여주자던가. 그런데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딸이 아빠가 너무 무섭데요.' "아, 네... 죄송합니다 고객님, 제가 태어난 성격이 이 지랄이라서 더 이상 편안하게 못 해 드리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할까? 여기서 더 뭘 해줘야 한다는 거지? 심한말로 직장이라면 일도 못하고 정리도 제대로 못하는 직원이라면 참다참다 몇 차례 주의를 주고 그것도 안되면 과장 회의때 우과장에게 확실히 반대의사를 날려 잘라버리자고 하겠다.
그런데 이건 그렇게 되는 문제가 아니잖아.

정말 이혼하는게 아니면 이대로 향후 40~50년을 같이 살 수밖에 없다. 근데 이미 같이 살아온 10년간 내가 아무리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달라진 것 없이 결혼초기나 지금이나 똑같이 행동들 하고 있다.
난... 그냥 집에서도 이렇게 종놈처럼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았고, 이후 들게 된 생각은 "가급적 어떤 것도 말하지 말자. 어차피 말해도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들인데, 내가 보기 싫으면 나 혼자 해결하고, 이 집에 나 혼자 사는 거처럼 나만 생각하고 살자"이었다.

어제도 11시가 넘도록 아이가 안자고 안방과 자기방을 들락날락 거리며 쓸데없이 놀기에 버럭 했는데 이제는 이런 것도 하지 않을까 싶다. 11시 되면 자라고 한 것이 벌써 몇 년 째인지도 모르겠다. 몇 시에 자든, 그래서 키가 안크고 살이 찌든 말든 아예 말도 안할까 한다. 자기 하고 싶다는 것 있으면 해주기는 하겠지만 웃으며 봐주고 싶지도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남의 집 아이 자라는 식으로 쳐다볼까 한다.

정말 더럽고 힘들어서 못 살겠다. 빌어먹을 인생.

 

금연을 하고 돈을 열심히 모아 뭘 어쩌려고? 나도 돈 많이 버니까 그냥 사고 싶으면 맘대로 사고, 쓰고 싶으면 맘대로 쓸란다. 전부 다 엿먹어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