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글과 삶

전에 누가 그러길, 만성피로를 겪고 있으면 식후에 바로 식곤증이 온다고 하던데


요즘 내가 그렇다. 어제 저녁부터 샐러드만 먹기로 했는데, 먹고 나서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슬슬 나른해지기 시작했다. 말도 느려지고 자꾸 눕고 싶은 마음을 꾸욱 참고 일본인 친구에게 전달할 녹음 파일을 만들고 워드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좀 했고.
샤워하고 나서 잠시 컴퓨터를 켰는데 한 시간인가? 잠시 게임 하다 잠이 들었다. 어제는 거의 8시간이나 잤는데 아침에 영 일어나기 힘들어 끙끙 앓다 집을 나섰다.
하루하루 삶을 사는 건 그다지 신기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다. 영화처럼 평소와 다른 무엇인가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내 삶을 위협하는 일이 갑자기 생기지도 않는다. 그냥 먹고 자고 싸며 하루를 보내는게 평범한 삶인 것 같다. 그냥 이렇게 무난한 하루를 사는 것. 이걸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하나 보다.

개인적으론 좀 더 쉬고 싶고, 좀 더 많은 자유시간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고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자면 더 많은 시간을 노동에 할애해야 한다. 웃긴 고리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자유시간을 누리기 위해선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 위해선 자유시간을 줄여야 하니 말이다. 어찌보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어제는, 사내게시판에 글을 썼다. 최근 병원 행정팀의 야근이 많이 늘었는데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에 대해 좀 신경을 써달라는 글이었다. 사실 쓰게 된 계기는 격주로 하고 있는 전체 전문의 회의였다. 회의에서 원장님이 자꾸 '우리병원 행정직들이 임금도 제대로 못 받고 야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하길래 '미쳤나... 일을 했는데 왜 돈을 안줘'하는 마음으로 행정직 이사람 저사람 물어보다 글을 쓰게 되었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일을 했으면 돈을 제대로 쳐주라고 쓴 글이기도 했다.
사실 심하게 말해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직장은 직장이 문제가 있는 것이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직장이라면 망하는게 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물론 세상 이치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랫사람 쥐어짜서 시스템이 돌아간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일까? 어제 퇴근하고 오늘 아침까지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고 있다. 내가 너무 나댄 것인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함부로 말한 것일까? 이상하게 기분이 찝찝해 글을 지울까 말까 생각하다가 방금 들어가 보니 50명이 읽은 것을 발견했다. 이거... 이제 충분히 읽은 것 같으니 지울까 싶다.
예전부터 하는 생각이지만 오래 살려면 움츠려야 하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하고, 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해야 무난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뭐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어머니의 끝임없는 잔소리도 있지만 사회생활에서 '모난돌이 정 맞는다'는 말을 몸소 체험해서 그런것 아닐까 싶다. 이 기준에서 보자면 어제의 내 행동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짓이 분명하니 말이다.

심하게 말해서... 병원내 다른 직종이 임금을 얼마 받던, 일이 얼마나 고되건 내 알 바는 아니다. 나야 하찮은 계약직이고 이 병원이 망하지 않는 한 거머리처럼 달라 붙어 열심히 돈이나 받는게 가장 좋은 일이니, 거머리는 들키지 않고 가만히 있는게 상책이겠지.
그런데도... 어제는 글을 써버렸다. 내가 실수한 것이 아닐까 아직도 고민하고 있다.

에휴... 망할 한노총 새끼들. 평소에 일을 잘 했으면 내가 글을 쓸 일도 없었을텐데.

댓글

  1. 이런 일에 나서고 나면 찝찝한 기분이 확실히 있죠. 그래도 좋은 일 하신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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