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한 것 없이 흘러가버린 주말

피곤하다.

벌써 저녁 9시 14분이다. 아까 샤워하고 나오니 아내와 아이는 어디에 갔는지 집에 없었다.
아깐 내가 잠시 술 마시러 나갔는데도 어디 갔냐고 물어보는 사람 없더라. 그래. 너희들도 내가 신경쓰이고 불편하겠지. 난 말만하면 '무섭다', '아이에게 더 잘해달라'고 이야기하는 두 사람에게 넌더리가 났고, 그들 역시 툭하면 화내고 인상쓰고 있는 내게 진절머리가 났겠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멀어지는 것 아닐까 싶다.

토요일 새벽 1시에 돌아온 이후로 난 집에 있으면 계속 술만 마셨다. 어제도 마시고 오늘도 마시고 그냥 줄창 술만 마셨다.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고 두 사람이 뭐라고 하는 것도 싫고 딱히 할 것도 없으니 칼로리 넘치는 술이나 먹고 정신없이 잠만 잤다. 뭐 그렇게 먹고자고 먹고자고를 반복했으니 살이 찌는 거겠지.

어제는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저녁에 아웃백 스테이크를 갔는데 거기거 아내가 내가 다녀온 곳이 어딘지 물어봤다. 그냥 대답해 줬는데 틀리길래 다시 이야기해줬고,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내게 화를 내더니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고 하더니 아이와 이야기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 매번 대답해줘도 기억 못하고 말을 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것은 당신 아니었나? 금요일 오후부터 내가 어디 갈 것이고 언제 출발할 것인지 이야기 해줬는데 몇번이나 이야기해줘도 엉뚱한 곳을 말한건 당신이고 그걸 고쳐줬다고 화내는 것은 무슨 경우지?
화내기도 싫고 짜증내는 것도 싫어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냥 이제는 일일히 해명을 하기도 싫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싫다. 무슨 말을 하든 난 이 집에서 화를 자주 내고 성질을 자주 부리고 뾰루퉁해져 있는 인간으로 낙인이 찍힌 상태이고, 매번 이야기를 꺼내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니 아무리 이야기해도 무한정 평행선을 긋고 있는 느낌이다. 그냥 서로 모른채 하고 따로따로 살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백번 고쳐봐야 매번 똑같은 일로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지겹다.

딱 하나 안좋은 것은, 해외여행을 가야하는 상황이나 이렇게 집에 오래 있을때이다.
가까이 있으면서 어색하게 이야기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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