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꼬여버렸다

오전에 배 아픈 소아 환자가 왔다


배 만져보고 조금 애매하기는 하지만 확인은 해야할 것 같아서 초음파를 진행했고, 초음파 결과상 충수염으로 나왔다.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입원장을 주고 외래를 보았다.

오전 외래가 끝나가는데 마취과 선생님에게 전화가 와서 오후에는 도저히 수술이 어려울 것 같으니 차라리 점심때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뭐 나야 빨리 하는게 좋으니 그러겠다고 했고, 12시에 수술이 잡혔다. 수술 들어가기 전에 환자 한 명 더 보고 수술실에 올라가는데 외래 간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환자가 입원할 병실이 안나서 입원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가능한 시간은 오후 2시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떡하지? 난감한 상태로 마취과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고, 마취과 선생님도 환자가 입원 못한 것을 알았는지 당황하고 있었다.
오후 스케쥴을 확인한 결과 위장관 천공 환자가 응급으로 하나 더 들어왔고, 정형외과 수술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업무시간에 못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답답한 상황에서 잠시 머리를 굴려봐도 적당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응급실에 환아를 옮겨놓고 수술을 한다고 치더라도 응급실 자리가 나 있는 것도 아닌데다 24시간 이상 방치될 확률이 너무 높아보였다.
이 사실을 환자 보호자(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뭐 당연하지...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근처 병원을 소개시켜 드리겠다고 했으나 가까운 대학병원을 요구했고, 보통 대학병원들은 충수염의 경우 입원과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씀드렸지만 듣지를 않았다.
어쩔수 없이 모 대학병원에 전화를 드렸지만 감감 무소식. 두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다시 보호자분에게 '충수염의 경우 대학병원에서는 당일날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근처 모 개인병원을 재차 권유해드렸다. 보호자분은 마지못해 승락하셨고, 약 20분 후에 차가 와서 모시고 갔다.

말 그대로 일이 꼬였다. 원래는 입원실 여유분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입원수속 후 입원이 이렇게 오래 걸리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오늘과 같이 수술이 많은 날이 잘 없었기 때문에 이미 오전에 오후 수술이 불가능해질 거라는 사실은 알 수가 없었다. 특히나 정오에 수술을 안하면 오후에서 밤까지 수술이 불가능해 진다라니.
사실 전원을 보낼까 응급실에 깔아놓고 수술을 할 까 고민을 잠깐 했다. 그리고 내 결정은 '일부러 고생시켜가며 환아를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응급실에 입원시키기 보다는 전원 보내는게 낫겠다' 였는데, 보호자분 생각은 달랐을 것 같다. 거기다 모 개인병원에서 차를 보내고 나서 약 10분 있다 대학병원에서 '보내던지 말던지... 근데 수술을 하게 되도 저녁에나 가능해' 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보호자분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게 환자의 선택권을 고의적으로 제한한 것이 된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또 당장 수술도 되지 않는 곳에 가서 환아 고생시키고 저녁까지 무의미하게 기다릴 바애는 빨리 수술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휴우... 민원이 들어와도 어쩔 수 없다. 그저 환아에게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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