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값어치와 직업의 귀천

초등학교때 반에는 구멍가게 주인집 아들, 작은 회사 사장님이 있었다


다양한 직업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직종의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들이 같이 공부를 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가 있었지만 모두 같은 초등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다.
대학생이 되고 나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전체 학생의 절반은 어느정도 사는 집안의 자식들이었고 나머지 1/2은 조금 형편이 어려운 집, 그리고 1/2은 부모가 의사인 로열 패밀리의 자식이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직군을 이루고 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인간들이 살고 있고, 복잡한 직업들이 한데 모여 사회가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무얼 하든간에 사회의 톱니바퀴로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고. 사람들은 내가 내 직업을 이야기하면 약간의 존경을 담아 조심스럽게 대해준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하는 일이 남들에게 존경받을 일인가 의아해 하면서도, 날 귀하게 생각해주니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정중하게 그 사람을 대해준다. 사실 지금도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귀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난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사람이고, 그걸 통해 돈을 받고 있을 뿐이다. 난 소말리아에서 총탄이 빗발치는 곳을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하지도 않고, 가족이나 부모가 없는 사람을 치료하겠다고 내 사비를 털어 일하지도 않는다. 그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평범한 노동자일 뿐이다.

옛날 공자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뭐 원문은 조금 다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 말이 내 삶의 좌우명이라고 해도 틀린건 아닌 것 같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내가 직접하니 남에게 아쉬울 것이 없고, 내가 할 수 없어 남이 대신 해준다면 감사한 일이니 감사하게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새벽에 우리 아파트의 쓰레기를 정리해 주시는 경비아저씨 라든가, 음식을 배달해 주시는 배달부 아저씨도 감사하게 생각하며 정중히 대해준다. 뭐 내가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는 그런 사람이라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하지 않고, 내가 못하는 일을 그 사람이 대신 해 주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인사를 하는 것 뿐이다.
그 사람이 나보다 임금을 적게 받는다고 해서, 그래서 그 사람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믿는다. 우리나라 치킨집 사장님의 절반은 대기업 임원이나 이공계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라는 농담을 들었다. 심지어 공학수학 문제가 막히면 치킨집 아저씨에게 물어보라는 농담도 있다. 어쩌면 젊었을 때 나보다 더 공부를 잘 했을 것이고, 나보다 더 격렬히 살아온 분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런 그분들의 삶을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직업 하나로 알 수 있을까?
내가 그 분들을 치킨집 한다고 우습게 봐야 하는 걸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사 살아온 날들이 나와는 정 반대의 길; 육체노동으로 점철되는 삶을 살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사람을 우습게 볼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당장... 하수도에 물이 새거나 문이 떨어졌을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던가?

한국사회는 돈이 전부다.
돈이 전부다 보니 임금을 적게 받는 사람을 무시하고, 임금을 많이 받거나 부동산이 많아 돈이 많은 사람을 귀하게 생각한다. 돈이 전부이다 보니 돈을 적게 버는 직종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고 혐오스러워 한다.
그게 과연 옳은 일일까...?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노가다를 한다고, 도로의 청소를 한다고 하찮게 여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난... 사람 값을 싸구려고 치고 직업에 귀천을 부여하는 이 사회가 너무 싫다.
기나긴 우주의 역사에서 인간은 쌀 한톨의 값어치도 없는 하찮은 존재들인데, 그 안에서 키재기를 하고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이 사회가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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