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토요일


토요일 당직이라 병원에 있다.

대충 새벽 다섯 시 정도에 일어나 병원에 나왔는데 원래 이 시간에 근무 시작하는 것은 아니고.. 어제 자정까지 환자 상태가 안좋아서 계속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있다가 아침되어 바로 튀어 나온 것이다. 새벽 6시 정도에 도착해서 환자 피검사 결과 보고 한참 고민한 후 이것 저것 처방을 넣었다.
원래는 너무 일찍 일어났으니 대충 일 끝나면 자야 하는데, 신경이 쓰이니 잠도 못 자고 모니터 앞에 멍하니 앉아 있다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환자가 안좋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환자들이 안좋다'.
역시 범위가 넓어서 그런가 몸 상태가 들쭉날쭉 하고 어제부터는 ARDS(급성호흡곤란 증후군 :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폐 자체가 부어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잘 안되는 것)이 발생해 두 환자 다 경계선에 걸쳐져 있다. 이유야 뭐 길게 볼 것 없이 화상과 그에 따른 합병증 때문이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한 명은 다음주 월요일까지, 그리고 다른 한 명은 2주 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개인 사정으로 목요일~일요일까지 한국에 없고. 이미 확정된 일이라 바꿀 수도 없고 여러모로 신경이 예민한 상태이다.

한 명은 외국인이라... 그리고 나이가 젊어서 더 신경이 쓰인다. 가족들이 환자의 상태를 듣고 급히 비행기를 타고 한국까지 왔다. 다치고 이틀인가 삼일만에 온 것이니까 이야기 듣고 바로 비행기표 구해서 급하게 비자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말도 통하지 않고, 환자는 의식도 없고 (완전히 재워놨다) 얼마나 답답할 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뭐.. 다른 한 명도 보통의 사정으로 다친 것이 아니라 걱정이 많이 된다. 단지... 다치게 된 경위가 너무 기구해서 여기다 쓸 수 없어 그렇지.

아무튼 오전 내내 혼자 빌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난 무신론자라 어디 빌 데도 없지만 그냥 혼자 중얼중얼 거렸다. '환자 좋아지면 좋겠다' '나아지면 좋겠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진짜 어디 게임에나 나오는 마법 포션같은게 있으면 얼른 사서 벌컥벌컥 먹이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 짜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고 아침보다는 조금 나아져서 기분이 좋아졌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발 이번 주말 잘 버티고 수술 받을 수 있게 되고, 내가 외국 다녀온 다음에도 멀쩡하게 살아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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