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2019년 5월 19일 07:49
환자분 한 명이 사망하셨다. ARDS가 간신히 풀려가는 과정에 패혈성 쇼크(세균이 신체에 유입되며 혈압이 떨어지는 것)가 겹쳐 버렸다. 밤새 40도가 넘는 고열이 발생했고 결국 이른 아침에 심정지가 발생했다. 평소와 동일하게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지만 심폐소생술 초기부터 아예 심장이 반응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환자는 떠났다.

중증 화상을 보는 입장에선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힘들었다.
이 환자분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까지 공부를 하러 온 교환학생이었다.

의사를 하며 혼자 갖게 된 불문율이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성격의 사람이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외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사정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싸우다 칼에 맞아서 왔고, 어떤 사람은 홧김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은 헤치려고 하다가 자기가 다쳐서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난 재판관이 아니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내 일이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내 일은 아니다. 괜히 그런 정보를 알아 봐야 선입견만 생기는게 사람이라 더욱 조심하고 어쩔때는 일부러 모른척 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취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한 명이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이 중태에 빠졌는데, 그 나머지 한명조차 시신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하는 말이지만, 본국에서 여기까지 달려 온 환자의 아버지와 형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나 역시 정말 이 환자를 살아서 고국에 돌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미안했다.

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어째서 사망했는지 계속 고민했고 살아남았던 과거의 다른 환자들과는 무엇이 달랐을까 계속 생각했다.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생각. 그걸 하루 종일 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과거에 얽매여 있기도 힘든 상황이다. 돌아가신 환자분 보다 조금 더 먼저 병원에 온, 더 넓은 범위의 환자분이 내 환자로 누워있기 때문이다. 이 환자 역시 상태가 매우 안좋아서, 어제부터 응급 투석을 시작했다. 지속적 신대체 요법이라고, 사람만한 크기의 기계가 24시간 내내 천천히 환자의 몸에서 피를 뽑아 정화하고 다시 넣어주며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어떻게 될 지 나도 모른다. 오늘 아침 피검사는 이 환자분 역시 생존 가능성이 매우 낮음을 보여줬다. 기계가 돌아가면서 폐 기능도 좋아지고 신장수치도 떨어졌지만 간 수치가 급상승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흔히 말하는 다발성 장기부전. 전신상태가 악화되며 혈류가 덜 흐르면서 신체의 주요 장기들이 서서히 기능을 잃어가는 양상이 검사상의 결과에서 보였다.
어쩌면... 더 상태가 심각한 환자였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 보다 조금 덜 신경을 썼을 지도 모르겠다. 가망이 거의 없는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이제 이 분 밖에 남은 환자가 없고, 어떻게든 살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말하지만,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우리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살려낼 힘이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1초에 한 명이 태어나고 있고, 3초에 한 명이 사망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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