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벤다졸, 알벤다졸 그리고 현대의학

유튜브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안다

어떤 암 환자가 펜벤다졸을 먹고 나서 폐암의 크기가 줄어들었다며 유튜브 방송을 했고, 그게 엄청난 속도로 퍼지며 암환자들이라면 대부분이 이 약을 구하기 위해 난리를 쳤다. 그리고 요즘은 알벤다졸(약국에서 흔히 사 먹는 구충제)이 비염과 아토피, 일부에서는 천식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너도나도 사 먹는 바람에 제품 자체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최근 일부 의료기관에서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특정 암에서는 어느정도 의미있는 효과를 밝혀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연구는 진행중이고 이 약물에 대한 대규모 임상시험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대 의약품이 연구되고 제품으로 나오기 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모든 의약품은 제약회사의 연구실에서 만들어진다. 연구실에서는 특정 질병에 대한 샘플을 가져다 놓거나 동물의 몸에 질병이 자라게 한 뒤, 천연물질에서 추출했든 화학적으로 합성했든 논리적으로 해 볼 수 있는 모든 약품을 실험해 본다. 그렇게 수천 수만개의 약품을 테스트 해 본 후, 하나에서 두 개의 잠재적 치료제가 선정이 되고 몇 차례의 동물실험을 더 거친 후 인체실험에 들어가게 된다.
1차 실험은 해당 약물의 체내 흡수와 대사에 대한 것과, 잠재적 부작용 확인이다. 정상 성인에게 약물을 투여해보고 혈중 농도와 몸에서 빠져나가는 시간, 그리고 몸에서 빠져 나갈 때는 어떤 부위로 어떻게 나가는지를 확인한다. 또한 이와 함께 인체에 투여된 후 발생할 수 있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확인한다.
1차 실험이 끝난 약품은 2차 실험으로 들어간다. 2차 실험에서는 해당 약물이 효과를 보기 위해 어느정도 용량으로 어느정도 시간 간격을 주고 투여해야 하는지 결정하게 된다. 이때는 정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약물이 목표로 하는 질병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2차 실험이 끝나면 흔히 말하는 임상실험(실제로는 3상 실험이라고 한다)에 들어가게 되는데, 대상이 되는 많은 수의 환자를 모아놓고 의사도 모르게 가짜약과 진짜 약을 섞어서 투여하며 진짜약에서 실제 치료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효과가 있음이 확정되면 비로소 시장 발매를 하고 대규모 유통이 일어나게 된다.
약물은 유통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는 4상 실험이 기다리고 있다. 효과가 있음을 확인한 약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유통되며 대규모의 환자들에게 투여가 일어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니, 그 데이타를 수집하는 것이다.
주저리 주저리 써 보았지만 약 하나가 실제 발매가 될 때까지 10~15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이 과정에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사망하거나 불구가 된다.

제약의 과정이 이렇게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시스템으로 굳어진 것은, 상품으로 나온 약이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별 거 아니라고 먹는 소화제 중에도 어떤 약은, 멀쩡한 성인 여성이 먹었을 때 젖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암환자의 치료법은 어떨까?
암환자의 치료는 보통 수술과 항암화학제, 그리고 방사선 치료등이 있다.
그리고 이런 치료법 역시 제약업계와 비슷하게 수십년간 시행착오와 임상실험을 통해 살아남은 것만 정리된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지금까지 확립된 대부분의 치료법은 수십년간 이 병으로 고통받고 세상을 떠난 수백만명의 고통과 목숨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치료해보고 저렇게 치료해봐서 효과가 없는 것은 배제되고 효과가 있는 것만 남은 것이 현대 암 치료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효과가 없었던 사람은 예외없이 사망했다. 백혈병에 사용되는 복잡한 항암치료 방법, 흔히 레지멘(regimen)이라고 부르는 여러 항암화학제의 조합을 사용하는 방법 역시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수십만명의 목숨 위에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의학은… 사람을 치료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그 학문은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목숨위에 세워졌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논리적 접근과 해석, 그리고 그에 따른 복잡 다단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지금의 의학이 만들어졌다.
현재 구충제에 대한 논란은 이러한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탈지성주의라는 말이 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이 오히려 낫다는 주장이다. 쉽게 생각해 주식에 대한 분석적 접근 같은 것은 다 필요없고 개인의 직감과 판단에 의존해 결정하는 것이 낫다는 식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웃기게도 21세기는 이러한 탈지성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미국을 달에 착륙한 적이 없다는 주장부터 지구평편론자, 창조과학, 안티백서, 환단고기론자까지 전세계적으로 그 동안 쌓아왔던 학문적 결과물을 부정하고 직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내용들이 흘러 넘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의 근원은 대부분 유튜브이고. 자극적인 소재를 자극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나와 너만이 알고 있다는 식으로 꾸며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다.
난 최근의 펜벤다졸과 알벤다졸 역시 이러한 탈지성주의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학적 접근 같은 것은, 이해를 하려 해도 잘 모르겠고 그저 유튜브의 누군가가 효과가 있다고 하면 그대로 믿어 버리는 것. 전문가라는 의사들의 주장따위는 들어도 잘 모르겠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나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더 믿고 싶은 마음. 물론 말기 암환자들이 그러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한다. 더 이상 의학적 치료법이 효과가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구충제를 믿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단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조기 암환자나 만성병 환자들이 수십 수백만명의 목숨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을 무시하고 효과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약물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한다. 현대의학으로 완치가 가능한데도 치료를 거부하고 구충제에 의존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은 행위니까 말이다.

혹자는 그런 말을 했다.
자연치료법에 의존하고 전통방식의 치료법에 의지했던 사람들은 그러다 사망하는 것이니 어떻게 보면 적자생존 방식의 진화와 비슷한 거 아니냐고. 결국 이런 난리를 거치며 현대의학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다 죽어나가고 의학적 치료법을 믿은 사람들만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는 것도 진화의 과정일 것 같다고.
냉정하게 생각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가혹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인류는 기후변화보다 이러한 탈지성주의로 인해 먼저 멸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몇 자 적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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