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을 생각하며

세월호와, 그리고 코로나19와 선거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각이 난다. 병원에서 아침 의국회의를 끝내고, 지금은 응급의학과 과장이 된 인턴 선생님과 함께 회진을 돌았다. 회진돌다 병실 TV에서 배가 뒤집힌 것을 보았고 아무 생각없이 혼잣말로 “병신들 지랄하네 쯧쯧” 했다.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사고라고 생각했고, 전원 구조되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며 이게 심상치 않은 일임을 알게 되었다.


총 사망자 299명.
그 중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던 단원고 학생 250명과 교사 11명이 사망했다.
(실종 포함)
그리고 루리웹에 이런 일이 있었다..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12/read/20870257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712/read/20973841?

어쩌면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증오하게 된 것은 이 사건이 컸으리라. 아직 피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린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분노했다. 다른 사람들은 최순실과 박근혜의 국정농단으로 대통령 탄핵을 결심했다지만, 난 이 날 이후로 매일매일 박근혜의 탄핵을 빌었던 것 같다. 단 한명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지 생각해보면 나에겐 이 일이 국정농단보다 더 분노할만한 일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19

2019년 12월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한 코로나19(COVID-19)는 현재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이탈리아의 의료시스템 마비를 시작으로 인근 국가들의 국경봉쇄, 통행금지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사망하기 시작했다. 유행 초기에 이탈리아는 모든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대생까지 동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80대에서 70대, 60대로 치료포기 연령을 낮추기 시작했다. 많은 나라가 실내 경기장에 임시 진료시설을 설치했고, 아이스링크를 거대한 영안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료와 입원을 기다리다 사망했고 수습되지 못한 시신이 수일간 방치되는 일이 벌어졌다.

해외 여러국가와는 달리 한국은 초기부터 최고 수위의 방역을 시작했고, 철저한 역한조사와 적극적 격리로 환자 발생을 최대한 억제했다. 그리고 현재는 매일 30명 안팎의 확진자만 나오고 있고 222명의 사망자만 나온 상태이다.

 


왼쪽부터 오늘 확인한 코로나19 확진자 수, 사망자수, 그리고 국가별 인구수 이다.
간단히 말해 작은 나라 하나가 지구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로 보면 아무 감흥이 들지 않지만… 저 숫자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인생을 살며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 받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자. 숫자 하나하나에 인생이 담겨 있는 거다.

만약… 우리나라가 코로나19에 대한 초기대응에 실패해 의료시스템의 마비에 도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만약,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이 질병이 퍼졌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침에 다른 선생님과 농담을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

하긴.. 만약 박근혜때 코로나19가 퍼졌다면,
우린 비닐봉지 잘라다 입고 마스크도 없이 환자를 보고 있었겠네요..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세계 최고의 국가라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는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런 일이 한국에서 생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인구 밀집도가 극히 높은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사망자가 적어도 만 명은 나왔을 것이고 전국의 의료시스템은 완전히 마비가 되어 살릴 수 있는 사람조차 사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을거라 생각한다.
충분한 의료 장비도 없이, 보호장비도 없이 환자를 보고 있는데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가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상상을 한다.
이게… 현재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내가 의사라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데도 가까이 갈 수 없고, 마지막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황이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선거

세월호 참사가 있고 나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내 가족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 그건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잘못된 정부와 대표를 뽑는 것이 나의 삶에,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그저 티비에 나와 헛소리나 지껄이고 말도 안되는 주장이나 하는 개그맨 같은 것이 아니었다. 헛소리를 그대로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잘못된 판단을 밀어붙여 수많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무서운 사람들이었고, 힘이 있는 자들이었다.

내일은 4월 15일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는 날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4월 16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누구를 뽑든 그것은 여러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특정 정당을 찍으라든가 누가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여러분이 누구를 뽑든 간에 그 책임은 오롯이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사실만 알아 줬으면 좋겠다. 내가 안찍은 사람이 되더라도 그 책임은 우리의 것일 뿐이다. 욕은 할 수 있어도 그뿐인 것이다.

부디 부탁컨데, 진지하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투표해주길 바란다.
더 이상 이 땅에 죄 없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안드레아 보첼리 :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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