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다 문득 든 생각

사실은 나.. 별로 필요 없는 것 아닐까?

어제 좀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외래보며 시달리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다른 집 아이를 잠시 맡아주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저녁 8시까지 맡아 주기로 했다 합니다. 아이들만 집에 두고 아내와 잠시 치맥을 먹고 왔습니다.

저녁 9시가 되어도 그 아이는 가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론 이미 그 집 부모님들도 집에 돌아온 것 같은데, “집에서 봐 줄 사람이 없어 아이를 맡아준 것이라면” 이미 집에 가야할 시간인데도 가지를 않더군요. 몇 차례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이제 간다, 게임 한판만 더 하고 간다 계속 그러더군요. 그만 집에 가라고 직접 얘기해서 보냈습니다.

피곤했습니다. 피곤한 상태로 집에 왔고, 맥주먹고 나니 더 피곤하더군요. 이제 좀 씻고 쉬고 싶은데 말 그대로 손님이 와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야 친구가 왔으니까 그저 좋을 따름이고 아내는 씻든 말든 무조건 침대에 누워있는 편이니 상관이 없었나 봅니다.
그 아이 집에 돌려보내고 화를 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저녁 9시가 되도록 남의 집에 아이를 놀게 두는 것도 이해가 안되었고 계속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눈치를 주는데도 집에 보내지 않는 아내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모처럼 친구가 왔으니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 아이 소원이 다른 아이들과 파자마 파티 하는 건데 그것도 못 참느냐?”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아이 신경은 오지게 쓰면서 제가 불편해서 계속 얘기하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으니까요. 마치 자신은 아이를 위해 너그럽게 이해해 주는데 당신은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네… 아이를 위해 너그럽게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아이가 아이패드랑 컴퓨터로 게임만 하는게 문제 되었을때 아이와 면담하는 것, 그리고 그에따른 벌칙을 이야기 하는 것은 나에게만 맡겼나요? 문제가 생겨서 항상 잔소리를 할 때는 내가 해야 하는 것도 그래서 그런 건가요? 뭐 항상 그렇듯이 나만 나쁜 아빠 나쁜 남편이 되었죠. 그리고… 오늘 당직휴무라 집에 혼자 있는데, 4일 지나 누렇게 변한 전기밥솥의 밥을 먹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저 사람들은 내가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 전혀 고맙게 느끼지도 않고 귀찮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내도 그렇고 아이도 그렇고 아는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아예 없습니다. 청소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느 정도 간격으로 해야하며, 식사는 어떻게 준비하고, 빨래는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밥 하는 법도 잘 모르고 그 흔하디 흔한 김치찌개 끓이는 법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결혼해서 지금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전부 잔소리하고 설명해가며 살아왔습니다. 지치지 않냐고요? 물론 지치죠. 지쳐서 화를 심하게 낼 때도 있고, 큰 소리를 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몸에 박히지 않은 습관이라 그런지 말 하면 그때 뿐이고 또 예전으로 돌아가더군요. 항상 포기하려고,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지만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저 사람들은, 이미 자기 나름대로 지저분하게 살든 어지르며 살든 자기 삶의 방식에 익숙해져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라면만 먹어도 전혀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딸아이가 저를 닮아서 엄청나게 살이 잘 찌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살이 찌든 안 찌든 사실은 별로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아내도 이 문제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별로 걱정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결국 이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는 내가 저 사람들에게 맞추지 못해서 생긴 스트레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후련….하다기 보다는 내가 지금까지 뭘 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전 지금까지 부모에게 배운대로, 아내와 딸아이에게 흔히 말하는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내의 경우 장모님이 평생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가정생활에 대해 배운게 하나도 없었고, 아이는 태어난지 20년도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모르니까요. 부모로서의 책임은 자식을 보호하고 키우며, 어른이 되었을 때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알려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두 사람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이었나 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게 옳은 일이었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아무리 그게 가치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원하지 않는데”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무의미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라는 사람이 의외로 이상한 구석이 있어서 단순 호의로 남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 줄 때가 있는데요, 그거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알려줘봐야 요즘 사람들 얘기처럼 “우와 설명충이다” 소리나 듣고 “꼰대” 취급이나 받겠지요. 어쩌면 가족에 대해서도 전 꼰대 취급을 받고 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기분도 우울하고 스스로가 한심스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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