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소연


레벨업의 시기와 고통

요즘 이상하게 탈장수술이 많습니다. 일부는 경험자의 추천을 받아서 오고, 일부는 그냥 왔는데 제가 진료를 보는 날이라 제가 수술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 이번달 내내 탈장 수술이 잡혀 있습니다. 

뭐 환자가 늘어 꾸준히 수술을 한다는 것은 제가 짤리지 않는다는 뜻이니 다행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요즘 유독 탈장환자가 늘어 조금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원래 한달에 다섯 건이 안되게 왔었는데 최근에는 한 달에 열 건이 넘게 잡힙니다.
뭐 동일한 수술을 계속 할 수 있으면 아무래도 실력이 늘기 때문에 좋은 일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최근 2~3개월동안 오는 환자들은 모두 이상한 환자들이었습니다. 
탈장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수술할 때 애를 먹는다거나, 평소에 드시는 약 때문에 피가 많이 나서 수술이 힘들어 진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이상한 질환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거나 수술 시야에서 해부학적 구조가 이상하게 뒤틀린 환자 뿐입니다. 결국 최근 수술은 맘에 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매번 원래 계획된 시간을 꽉 채워 수술하거나 조금 오버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술 중에 이상한 사고가 터져 절 힘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연세가 많은 분이고 가지고 계신 질환도 많아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막상 수술을 들어가 보니 어디 건드리기만 하면 피가 펑펑 났습니다. 거기다 이상하게 시야가 안좋고 탈장도 너무 심해서 도저히 기존 방식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평소에 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술을 진행했고 총 수술시간이 4시간 반 걸렸습니다. 
...사타구니 탈장의 경우 최근 제 기록은 한쪽만 할 때 1.5시간, 양쪽을 다 할때 대략 2시간에서 2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이 환자는 양쪽을 수술하며 4시간 반이 걸린 것이지요.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어떻게 해내기는 했는데 성취감보다는 우울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평소와 같이 일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 연속으로 사고가 터지거나 어려운 문제 발생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보통 이 시기를 "레벨업의 기간"이라고들 하는데요,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면 다음에는 실력이 늘어 왠만한 문제는 척척 해결할 수 있게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최근 기록을 보면 제가 레벨업의 기간에 들어간 것 같은데 너무 힘듭니다. 그리고 잘 되지도 않구요. 


하아... 환자분들도 수술이 잘 되기를 빌지만 사실 수술하는 의사는 수술이 무섭습니다. 
예전에 고 최요삼 선수가 일기에 그런 말을 썼다지요? "난 맞는게 두렵다" 솔직히 수술하는 의사의 상당수는 수술에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 어떤 수술도 쉬운 것은 존재하지 않고 수술받는 사람 백이면 백 전부 미묘하게 구조가 다릅니다. 그리고... 수술과 관련된 합병증 발생율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수술을 잘 하는 의사"라고 하면 합병증이 생기지 않는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사들 사이에서 수술 잘 하는 의사는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합병증이 발생해도 현명하게 해쳐나가는 의사"입니다. 왜냐고요? 합병증 발생율은 절대로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A라는 수술에 대해 B라는 합병증이 0.1%의 확률로 나타난다면, 우리가 천 건의 수술을 하면 반드시 한 명은 B 합병증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수술하는 의사는 항상 두려움을 갖고 수술실에 들어갑니다. 언제든 합병증이 생길 수 있고 오늘이 그날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두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 날아가는 합병증도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수술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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